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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범 (kbself )
에반게리온을통한 안노히데아키와의싱크로 03/22 23:13 375 line

<<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통한 안노 히데아키와의 싱크로 >>


“나는 왜 이러한 글을 쓰는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시기는 1995년 8월이었다. 게임잡지인 게임챔프 95년 9월호에 에반게리온 1회가 조그맣게 공개된 것을 보았던 것이다. 카츠라기 미사토가 미소녀로서 등장하고 에바 초호기가 메카닉물 임을 보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히 '오 나의 여신님'의 인기를 뒤이을 전형적인 상업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불행히도 다음해인 96년 11월까지 계속되었다.

에반게리온을 그저 별다른 주제가 없는 상업 애니메이션이라고 인식해버린 나는 에반게리온의 비디오 따위를 사보는 것은 제작사인 가이낙스의 상업주의에 놀아나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국내 영화 잡지 '월간KINO' 96년 12월호를 본 후에 바뀌기 시작했다. 월간KINO는 에반게리온의 결말을 'KINO가 던지는 97년 질문(들)'로 선정하여 두 페이지에 걸쳐 에반게리온의 간략한 줄거리와 가이낙스에 관한 자료를 실었으며 에반게리온이 내포하는 선과 악의 규정이라든지 소외와 컴플랙스, 내면의 불안 등도 언급해 놓고 있었다.

나는 이 짧은 글에서‘제26화의 놀라운 결과와 종영’ 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고 에반게리온이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닌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 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잡지사와 애니메이션 제작사 간의 결탁은 잡지 기사의 비중을 크게 좌우한 다는 사실에, 가이낙스가 등에 업고있는 카도카와 쇼텐(角川書店)의 `월간Newtype'을 (수입금지 서적으로 묶여 가뭄에 콩나듯 구해 보던 것을) 매월 사보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 발간되는 서적들 중에서도 에반게리온의 자료를 수집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때쯤 월간Newtype은 고정적으로 에반게리온 관련기사를 싣고 있었고 국내 영화잡지들도 일본 애니메이션 기사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PREMIERE는 안노 히데아키와의 단독 인터뷰를 시도하는 한편, 1997년2월, 월간KINO는“신세기 에반게리온 논쟁 선언.”이라는 특집 기사를 싣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KINO의 에반게리온 연구, 혹은 에반게리온을 이용한 독자확보는 그해 여름 에반게리온 극장판 종영 직후까지 계속되었다. 이미 거리에서 에반게리온 포스터나 엽서 등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국내 에반게리온 팬들은 에반게리온의 줄거리 전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아스카는 신지에게 마음이 있다.', '레이는 이카리 유이의 클론이다.' 같은 스토리적인 요소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에반게리온의 전체 주제나 작가의 의도 같은 어렵고 생각하기 까다로운 것들에는 소홀했다. KINO 97년2월호에서는 이러한 경향을‘애니메이션이라는 쟝르의 비평적 빈약함’이라 하였고 나는 이같은 사실에 큰 반감을 갖고 있었다.

에반게리온의 완전 종결인 극장판 공개 이전까지 잡지마다 난무하던 '에반게리온은 수많은 수수께끼들을 남긴 채 종영하고 말았다'는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에반게리온을 소개한 반복되는 기사들만 보아오던 나는 주간 영화잡지 '씨네21'에서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박병호씨가 쓴 '극장판 개봉 첫날 관객 15만. 일본, 에반게리온 돌풍.' 이라는 기사를 접하며, 과연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에반게리온에 열광하는지 왜 그토록 파격적인 결말을 보이는 건지를 반드시 알아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여름 최후의 에반게리온의 종말 'Air-진심을 너에게' 가 개봉 되었고 비로소 안노 히데아키는 그의 진심을 오타쿠 앞에 드러내었다. 헌데, 극장판의 이같은 놀라운 결말은 작자의 원래부터 계획된 의도인가? 나의 생각은 바로 여기에 촛점이 맞춰졌다.

당시 나는 에반게리온의 파격적 결말을 당초 계획된 것이 아닌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의 인기를 확인한 후에야 이 정도의 인기라면 오타쿠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도된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문제를 풀어 나갔다. 에반게리온의 전개상 전반부의 전개는 후반부의 결말과는 전혀 다른 극히 평범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자체는 감독 안노 히데아키에 의해 철저하게 구상된 오타쿠 보완계획이었다.



" 안노 히데아키는 누구이며 "
그의 사고는 작품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안노 히데아키는 1960년 생으로 어려서부터 만화영화를 좋아했고 학창시절부터 이미 독자적으로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이다. 오사카 예술대학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현재 가이낙스의 대표인 야마가 히로유키를 만나게 되고(이 사람은 오네아미스의 날개 제작시 연출을 맡았다.) 그와 함께 작업에 열을 올렸다. (주로 8mm를 이용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 후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통해 당시 오타쿠 문화의 저명인사였던 오카타 토시오와 현재 가이낙스 통괄 본부장인 다케다 야스히로를 만나 '다이콘 필름'을 설립했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제작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몰두한 결과 대학에서 쫓겨나게 되고 후에 미야자 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기도 한다. 그 뒤 반다이사의 후원으로 가이낙스로 새롭게 탈바꿈한 다이콘 필름에 다시 개입, 오타쿠 집단 가이낙스의 주축 멤버가 되었고 이미 그는 80년대 오타쿠 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가이낙스의 야심작이었던 '오네아미스의 날개 - 왕립우주군' 이 흥행에 실패하자 흥행 실패의 요인을 나름대로 분석하던 중 '오네아미스의 날개' 에는 오타쿠적 요소가 치명적으로 결여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이 때부터 오타쿠 문화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연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오타쿠 문화의 폐쇄성과 현실 도피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다.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뛰어난 작품성을 보지 못하는 오타쿠의 맹안은 미소녀나 메카닉을 바라보며 심미적으로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했으며 안노 히데아키는 이것을 열렬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오타쿠의 비디오' 라는 작품을 통해 오타쿠 문화의 폐쇄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성격들을 회의하고 풍자하였으나 사람들은 그의 의도를 모른 채 "재미있구나." 정도로 넘기고 말았다.

88년 그는 '톱을 노려라! 건버 스터'를 감독하며 오타쿠적 요소를 실험적으로 집결시켜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OVA명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안노 히데아키는 다시 한 번 오타쿠 문화에 실망하고 만다. 아무런 주제도 별다른 내용도 없는 만화영화가 단지 미소녀와 메카닉을 등장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그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사실 '톱 노려라! 건버스터' 에는 안노 히데아키의 독특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최종회의 흑백처리였는데, 월간KINO 2월호에서는 이러한 처리가 무의미한 것이며 이는 당시 안노 히데아키가 처해 있는 폐쇄상황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흑백의 화면처리는 절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당시 안노 히데아키가 처해있는 상황은 폐쇄상황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 단지 실망일 뿐.

안노 히데아키는 만화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 정신적 안정만 취하려 드는 오타쿠들의 시각을 현실로 돌리고자 하였는데 이에 대한 시도가 바로 흑백의 화면처리였다. 칼라에 비해 흑백화면은 상당한 거리감을 준다. 흑백처리는 칼라의 생동감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것은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특히 순간적으로 칼라에서 흑백으로 전환 될 때 이러한 거리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즉, 안노 히데아키는 오타쿠들을 향해 "당신은 작품 외적 세계 즉, 현실 속에 있는 존재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메세지는 약간의 느낌으로만 작용했을 뿐,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았다. 89년부터 NHK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의 성공은 아니메팬들의 열정적 지지를 동반했고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또다시 안노 히데아키를 실망시킨다. 가이낙스 역시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계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적자를 냈고 자신의 전력을 쏟아 부었던 안노 히데아키도 쇠진해 버린다. 결국 그는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침묵기를 맞이하게 된다.

에반게리온 이전의 오타쿠 보완계획 - 완전실패



그리고 그는 오타쿠의 장례식을 위한 '프로젝트 EVA' 라는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잔혹한 천사의 테제. "

잔혹한 천사의 테제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푸른 바람이 지금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
단지 나만을 보며 미소짓고 있는 당신.
살며시 닿는 것 찾는데 열중해서
운명조차 아직 모르는
천진한 눈동자.
그렇지만 언젠가는 깨닫겠지요.
그 등에는
먼 미래를 지향해 나갈
날개가 있다는 것을......


자칫 놓치기 쉬웠던 것이 바로 이 '잔혹한 천사의 테제' 의 노랫말이었다. 나의 전반부는 작가의 개입이 거의 없다는 가정을 무너지게 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 노랫말이었다.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 단지 나만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당신' 이란 것 자체가 폐쇄적 상황에서 단지 에반게리온이라는 영상물을 통해 위안과 쾌락을 얻는 '오타쿠' 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 반드시 오타쿠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노 히데아키의 확신이 들어가 있는 셈이 된다. 안노, 그는 에반게리온 제작에 착수하던 그 때 이미 오타쿠 문화를 면밀히 알고 있었다.

미소녀-거대 메카닉-밀리터리-동성애-미소년-미스테리적 요소- 각종 페러디의 내용 구성인자들의 모든것이 오타쿠 취향에 맞도록 설계 된 것이었다. 가사 중의 '살며시 닿는 것 찾는데 열중해서' 라는 말도 말초적인 것을 향유하려는 오타쿠의 습성을 나타내며 '운명조차 아직 모르는 천진한 눈동자' 역시 가상의 세계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정말로 자신의 운명조차 생각해 보려 들지 않는 오타쿠의 현실 도피적 경향을 시사한다.

하지만 결국 안노 히데아키는 '오타쿠 자신은 자신이 지닌 미래와 그 미래를 지향할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 노래함으로서 자신이 보여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방향을 짐작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 나 이러한 노래 가사만으로 안노 히데아키의 숨은 의도를 알아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로소 신세기 에반게리온 제1화가 공개되었다.


주인공 신지가 에바 초호기에 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제1화에는 '달아나선 안 된다' 는 신지의 대사가 강하게 메아리 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달아나선 안 된다는 안노 히데아키의 메세지가 들어있는 부분이며 이 대사는 제3화를 비롯해 여러 번 되풀이된다.

제3화에서는 자신이 몰두해 있는 세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오타쿠의 세태를 보여준다. 즉 '목표를 센터에 놓고 스 위치' 라는 말을 극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신지의 모습이라던가 '아버지도 없는데 나는 왜 또 에바에 타고있는가?' 라고 자문하는 신지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을 보며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오타쿠들의 끌려 다니는 듯한 모습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제4화에는 밀리터리에 빠져있는 켄스케가 "좋아서 하고있을 뿐이야." 라고 말하자 신지는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며 극히 현실적인 충고를 한다. 이러한 부분도 안노가 신지의 목소리를 빌어 오타쿠들에게 충고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충고는 제19화에서 카지가 '혼자서 뭘 해야하는지 결정하라.' 고 함으로써 다시 한 번 되풀이된다. 그리고 제19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대사가 나온다.

레이: 불쾌한 것을 피하는 거야.
신지: 까다로운 것을 피하는 것이 뭐가 잘못된 거야?!
겐도: 또 도망가나!

여기서 까다로운 것을 피하려는 신지야 말로 현실을 피하려는 오타쿠와 통한다.

그러나 정작 오타쿠들은 이러한 안노 히데아키의 의도를 모른 채 비극을 향해 걷고 있었다.



“ 에바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극. “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자기만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신지는 에바에 타는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며 자아 정체성을 갈구한다. 레이 역시 클론으로서의 결핍을 느끼며, 아스카는 유년기의 정신적 쇼크를 겪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22화에서 사도에게 정신오염을 당하고 폐인이 된다.

미사토 역시 아버지의 부재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 며 동료인 카지에게서 아버지를 찾으려 한다. 컴퓨터 공학자인 리츠코는 학자로서의 어머니의 모습과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며 다른 한 편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으로 겐도마저 에바와 동화 되어버린 이카리 유이의 부재에서 콤플렉스를 느끼며 유이의 복제인 레이에게서 유이의 모습을 찾는다.

그는 제12화에서는 '가족이라는 현실에서 달아나려는 사람' 으로 서술된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핍들을 대하는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안노 히데아키가 그토록 문제의식을 보였던 현실에서의 도피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타쿠, 아니 좁은 의미에서 에반게리온의 팬들은 TV, 비디오, 음반과 포스터, 각종 캐릭터 상품들을 구매, 소유함으로서 행복과 심적 안정을 취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매혹적인 상품은 그들 을 까다롭고 생각하기 싫은 현실이라는 것에서 탈출시켜 주는 작용을 한 것이다.

제20화에서 신지는 에바와의 싱크로율이 한계치를 넘어 에바와 동화되어 버린다. 에바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에바와 동화되어 버리는 오타쿠들의 모습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코스프레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그 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에바에게 다가가는가? 에바에 동화되 신지는 미사토, 레이 ,아스카 즉, 안노가 만들어 낸 미소녀 캐릭터들의 유혹을 받는다. 그런데 세 사람의 소녀는 신지를 향하는 것 만이 아니다.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시청자인 오타쿠들을 향해있다.

" 육체적, 정신적으로 함께 있고 싶니? 평안해 질 거야. "

이것이 그들의 속삭임이다. 그리고 오타쿠들은 정말로 그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평안을 느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에바와의 싱크로라는 의미도 결국은 얼마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빠져드느냐 하는 오타쿠의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 하나, 싱크로 400%의 신지는 "내 세계이지만 모르겠어... 불쾌한 이미지. 적이다!" 라며 현실을 외면하나 미사토가 "에바에 타기 때문에 넌 네가 되는 거야." 라며 깨우쳐 준다. 그리고 신지는 비로소 에바와의 동화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에반게리온에 빠져 있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오타쿠의 모습, 아니 더 이상 오타쿠가 아닌 현실 속의 사회인으로 각성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른 채 에바 안에 머무르려는 현상. 그것이 바로 전 세계에서 빚어지는 에반게리온 현상이며, 이것이야말로.....

“에바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극이야...”
제23화에서 미사토가 했던 말이다.



마지막회는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은폐해 버린다. 거기에는 왠지 기묘하고 박력있는 위기의식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자체이지 메시지가 아니다.
1997년 2월 KINO.
하지만, 정말 중요 한 것은 메시지였다.



" 그리고 안노 히데아키는 "
세계의 중심에서 자신을 외쳤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대단원을 맞으며 안노는 그의 목소리를 보다 직설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25, 26화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그것이다. 너의 세계. 네가 평안할 뿐이고 아무도 없는 닫힌 세계. 그것은 네가 원한 세계이지만 스스로 닫은 세계야.......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이 이제껏 연출해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세계를 이렇게 말하고는 오타쿠들의 현실을 폭로한다. 마치 아스카가 당했던 것처럼 오타쿠들은 일련의 정신오염을 당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본격적인 오타쿠 보완계획이다.

안노의 오타쿠 보완계획은 내용상의 인류 보완계획과는 전혀 다르다. 오타쿠 보완계획이 오타쿠 자신을 사회적 존재임을 확인시키고 현실 속으로 회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인류 보완계획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독립개체로 온전하게 하고자 하는 계획인 것이다. 즉 인간의 사회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오타쿠에게 개인만의 폐쇄상황을 제공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계획이다. 이렇게 자신의 견해와는 정반대의 인류 보완계획을 안노 히데아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어떻게 진행시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류 보완계획이란 인류를 진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제13화에서 바이러스형 사도가 NERV의 컴퓨터 MAGI를 해킹 할 때 사도가 진화하자 겐도는 "진화의 끝은 자멸이다. 죽음 그 자체야." 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안노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 인간은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즉 그는 인류 보완계획이라는 아이템을 극중에서 제시하되 그것을 부정함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인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극장판에 서 인류 보완계획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라는 게 드러나고 그 열쇠를 쥔 주인공 신지는 불완전한 인간을 택해 인류를 구제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것이 인류 보완 계획의 종말이다.

그럼 오타쿠 보완계획은 어떻게 끝나는가? 오타쿠의 둔감함 때문에 인류 보완계획과 마찬가지로 극장판까지 질질 끌게 되지만 일단은 TV판에서 일단락 매듭지어진다. TV판 마지막에 제시되는 "인류의 보완이 시작됐다.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갔다." 라는 메시지와 "이것이 네가 이끄는 세계의 종말, 모든 결과 중 하나야." 라는 메시지로 알 수 있다.

보완이 시작되며 이제까지의 세계가 무 로 돌아간다..... 여기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것은 하나의 픽션이며 따라서 이것이 끝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새겨져있다. "이게 진실.. 많은 것의 결과가 이것." 이라는 말.... 이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오타쿠 보완계획의 전부이며 안노 히데아키의 목표였다.

그리고 오타쿠를 대신하여 에반게리온에 등장한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지 몰라. (여기서 벽이 깨지는 모습이 나온다. 신지의 마음의 벽, 오타쿠들의 스스로 닫은 벽, 사도의 AT필드.. 이 모든 것이 깨지고 개화하는 모습이다.) 그래 나는 나일 뿐이야. 나는 여기에 있고 싶어. 나는 여기에 있어도 좋은 거야." 그리고 그는 세계의 중심에 서서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다. 이렇게 오타쿠는 보완되었고 오타쿠 보완계획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오타쿠 보완 계획 자체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TV판 셀 애니메이션 영화도 끝이 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에반게리온의 파격 결말은 오히려 에반게리온의 팬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고 그들은 안노의 의도는 모른 채 극장판의 화려한 결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TV판 만으론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안노는 극장의 관객들을 스크린에 올리는 극명한 방법으로 오타쿠들을 보완시키게 되고 오타쿠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세계에 대해 쓰라린 배신감을 맛보게 된다.

제로 안노 히데아키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오타쿠들에게 에바의 세계가 가공된 세계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TV판 마지막화에서 문자가 어지럽게 비춰지고 주인공들의 독백이 마치 무슨 의식을 치루듯 진행 될 때 그는 등장인물들의 콘티나 마커로 그려진 그림들을 등장시켜 이처럼 에바의 세계는 단순히 성우의 목소리가 더해진 그림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나서 극히 평범한 셀 애니메이션 형태의 또 다른 에반게리온을 갑자기 진행시킨다.

아스카가 신지의 집으로 와 신지와 함께 등교하고 미사토가 학교 교사로 등장하는 행복한 분위기의 에반게리온 세계가 다시 한 번 펼쳐지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를 보며 오타쿠들은 이제까지 진행되 오던 시종일관 침울하고 자폐적인 그리고 오타쿠들이 생각하기 싫은 에바 후반부의 까다로운 전개에서 일순간 해방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안노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곧바로 원래의 에바 세계로 돌려 버린다. 오타쿠들이 아쉬움을 느끼게 하여 오타쿠 자신이 바라고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을 잊게 해 주는 보기 좋은 세상...)

예상치 못한, 만화영화로서는 있어선 안될 전개를 보며 불안해 하고 있을 오타쿠들에게 '자 그럼 이런 세계는 어떨까?' 하고 다른 에바의 세계를 보여 줌으로서 결국 원래의 에바도 이같은 만들어진 세계라는 것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따라서 이 세계의 종말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는 안노의 의미가 오타쿠들에게 전달 된 것이다. 오타쿠들은 여기서 이미 에바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어야 했다.

작품의 완성은 주제의 표출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이처럼 TV판에서 이미 끝난 영화이다. 그러나 그걸 깨닫지 못한 오타쿠들은 스토리상의 결말을 원했고 가이낙스는 극장판을 제작해야 했다.

"아직도 모르겠니? 그럼 다시 한번 말해 줄게."....
이것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이다.


세계를 뒤흔든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작자의 주제가 가장 강하게 전달 되는 영화이다. 만화영화라는 장르에서 그토록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전달한 사람은 없으며, 그 생각이 자신이 만든 영화의 소비자를 비판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혁신이다.

그런 확고한 주제의식이 오늘의 에반게리온 현상을 빚어냈고, 또한 그것이 에반게리온 현상을 종식 시켰다. 안노 히데아키의 이름은 영화사에 남을 것이며, 사람들은 후에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안노 히데아키가 우리들을 보완시켜 주었다고.......




1998. 2. 2.
Written By KB.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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