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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명의 정의

가이낙스 : 가이낙스는 일본 데카이의 초슈현 사투리 "가이나" ('크다' 라는뜻) 에서 나온말로 ガイナックス가 되어 '가이낙스' 라고 불리게 된다. '크다!'란 말 그대로 회사가 애니메이션계에서 커지기 바라는 소망을 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 참고로 맨 뒤에 'X' 는 그냥 붙였다고 한다 (GAINA + X)




■ 아마츄어들의 프리스타일

지브리 스튜디오, 반다이/선라이즈처럼 큰 프로급 회사들 가운데 같이 격을 다루는 유명한 회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가이낙스, 아마추어들이자 본래 작은 매니아들의 영상물 동호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지워받기 시작하며 거물급 회사로 자리를 잡게된 세상의 수많은 각종 매니아동호회들에게 특이한 성공예의 본보기중 하나이다.

능력이 있어서 애니, 영상산업에 프로로 입문하는 사람들이나 설립되는 회사가 있는가하면 이 곳은 '의욕이 있는 자' 들만을 위한 공간이고 자유로운 작업방식을 제공한다는게 바로 메리트이자 그들만의 개성이 잔뜩 담긴 작품들이 나오는것은 당연지사이다. 한두회사들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일단 그 시대의 애니산업을 리드하는가하면 수많은 회사들이 그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려고 하다가 자신들의 작품의 퀄리티 저하와 개성을 잃는다. 하지만 그런 풍기문란한 산업속에서도 상업성이 적고 유행과 달리 자신들이 해보고 싶은 것,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것, 한번 실험해보고 싶은것들을 서슴치 않고 시행하는 것이 바로 이들만의 유니크한 방식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오타쿠조직이었기때문에 다른 업체에서는 시도해볼수도, 만들수도 없는 작품들이 나오는것도 흥미롭다.

오늘도 수많은 아마츄어들이 가이낙스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자신들만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회사라기보다도 친구방이나 제 안방처럼 이용할수 있는 작업터 공급과 가이낙스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새로운 아마츄어의 일러스트들이 매주마다 홈피의 대문을 장식하는 모습을 볼수 있는 것이 다른 매니아들이나 의욕있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을수가 없다.




■ SF에 미친 오사카의 작은 영상동호회

겨우 15년여의 짧은 역사로 일본 미디어 업계에 '최초'와 '신드롬'이라는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제작사 가이낙스(GAiNAX). 이런 카리스마를 가진 가이낙스이지만 그 기반은 이외로 프로 크리에이터가 아닌 오사카 지역 학생들이 주축을 이룬 작은 아마추어 영상제작 그룹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1년, 오사카에서 개최되었던 제20회 일본 SF대회 DAICON III에서 가이낙스의 싹이 움튼다

즉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대회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모체로 삼는다. 이 작품은 대회실행위원인 오카다 도시오와 다케다 야스히로가 기획한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서, 가방을 맨 소녀가 로봇과 괴수를 무찌르며 컵에 담긴 물을 무사히 옮긴다는 내용에 동서양 SF작품의 캐릭터가 총출현하는 이색작이었다.

훗날 가이낙스의 핵으로 일하게 되는 안노 히데야키나 야마가 히로유키 등이 이 작품을 통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작품의 성공 후, DAICON III 주최그룹을 중심멤버로 오사카의 모모야에 설립된 것이 일본 최초의 SF전문점 '제네럴 프로덕츠(General Products)' 다. 자체 기획한 작품의 캐릭터 상품을 파는 것은 물론 자주영화제작 서클인 '다이콘 필름(Daicon Film)' 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과 특수촬영 영화 등 다양한 아마추어 작품을 제작한다.

특히 1983년 제22회 일본 SF대회 DAICON IV때 발표된 오프닝 애니메이션은 프로수준을 능가하는 높은 퀄리티로 팬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다. 이들에 대한 소문은 금새 퍼져 일본 곳곳에서 다이콘 필름의 상영이벤트가 열리는 한편 그 실력과 인기는 매스컴을 통해 대중에게 차츰 소개된다.

이를 계기로 대형 애니메이션 스폰서 또한 그들을 주목했고 다이콘 필름의 멤버들은 마침내 프로 데뷔의 기회를 거머쥔다. 다이콘의 프로 첫 데뷔작은 1980년대 걸작으로 뽑히는 '왕립우주군' 이었다. 기획자 오카다가 이미지 보드를 기초로 한 애니메이션 기획서를 일본 굴지의 완구제작사 반다이에 제출, 젊은 그들의 열정과 참신한 아마추어 정신에 감동한 반다이 측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 '꾼' 들이 모인 1990년대 아니메의 대표주자

'왕립우주군' 은 8억여 엔이라는 당시로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했다. 이와 동시에 야마가 히로유키(감독), 안노 히데야키 (작화감독, 메카닉 디자인), 사다모토 요시유키 (캐릭터 디자인), 그룹 YMO의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 등 촉망받던 크리에이터들이 대거 참여한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흥행부진이었다.

미국 나사(NASA)를 로케이션해 고증한 리얼한 우주선 내부와 세트의 설계, 치밀한 작화와 신선한 영상 아이디어 등 기술적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을 보여 주었지만, 굴곡 없는 평이한 이야기 전개는 상업 애니메이션이 지녀야 할 매력을 잃게 했다.

역시 경험부족이었다. '왕립우주군' 의 실패로 가이낙스는 결국 재정난에 빠졌고 제작의 방향은 완전히 오락성으로 선회한다. 그 후 가이낙스는 반다이나 AIC 같은 스폰서가 제시한 기획물을 제작하거나 다른 프로덕션의 하청일을 하면서 재기를 노린다. '애플 시드,' '울부짖는 용,' 등이 그런 작품으로 멤버들은 이를 통해 좀더 상업적인 감각과 역량을 기른다. 한동안 자가진단과 재충전의 기회를 갖었던 가이낙스는 1988년 재기의 방아쇠를 당긴다.

다이콘 필름 시절 패러디로 두각을 보이던 안노 히데야키를 내세워 OVA 작품 'Top을 노려라! 건버스터' 를 만든 것이다. 감독을 맡은 안노는 '왕립우주군' 때를 거울삼아 '메카닉, 액션, 미소녀' 라는 흥행의 3대요소를 적극 활용, 철저히 애니메이션 팬을 위한 작품을 만든다. 또한 장기간 공을 들인 기획 하에 장기인 패러디 기법과 정밀한 작화 실력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 'Top을 노려라! 건버스터' 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가이낙스는 마침내 진정한 프로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가이낙스의 독특한 창작세계를 대중의 머리에 확실히 인식시킨 것은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다. 당초 NHK 방송국과 도호사가 기획한 TV 시리즈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80일간의 세계일주' 라는 기획안과 도호 측의 '보석을 쫓는 3인조' 및 '여주인공의 신비한 보석,' 가이낙스 측의 '해저2만리' 등의 모티브가 믹스되었다.

'나디아' 가 지닌 무난한 매니아성은 애니메이션 팬들은 물론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고 가이낙스는 단번에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무서운 신세력으로 등장한다. 그 후 가이낙스의 신화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로 이어진다. '나디아' 이후 4년이라는 공백기, 완구화에 결점이 많은 메카닉, 방영시청률의 부진으로 초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안노 감독만이 그리는 세기말적인 작품관과 독특한 스토리, 열정의 제작스태프에 의해 만들어진 박력 넘치는 고품질 영상은 21세기를 코앞에 둔 일본 전역을 아니메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 자유로운 발상과 불타는 창작욕

이런 성공의 신화는 가이낙스란 회사가 가진 체제의 유연성에 기인한다. '왕립우주군' 과 같은 장편을 만들려면 장편 체제로, 'Top을 노려라! 건버스터' 와 같은 OVA (Original Video Animation0를 만들려면 OVA 체제로, 만드는 작품의 목표와 특성에 따라 각 메인 스태프들의 자리가 바뀌면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상황에 따라 체제를 부담 없이 적용시킬수 있는 것은 아마추어 시절에 익힌 생존방법 중 하나로 기성 애니메이션 회사라면 이런 것은 불가능하다.

체제가 유연한 만큼 섭렵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TV 시리즈, 극장용, OVA 등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특수촬영영화, CF, 프로모션 영상, pC게임과 PS게임 개발, 이벤트 구성 등 신세대로부터 각광을 받는 것이 가이낙스가 추구하는 비즈니스의 근본이다. 또한 다마고치 게임의 원조가 되는 세계 최초의 육셩게임 '프린세스 메이커(1991)' 를 탄생시킨 것처럼 새로움으로의 도전은 가이낙스를 대표하는 색깔이다.

이렇게 카멜레온처럼 여러 매체에 무난히 대응할수 잇는 능력, 즉 확실한 작품을 만들어 상품화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까지 어떤 회사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하고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힘의 원천에 대하여, 가이낙스의 관계자는 "멤버들이 모든 놀이를 좋아해 거기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을 만들고 싶어하고 아마추어 정신은 버리지 않고 즐기면서 일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90년대 그 당시 기준 1백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던 가이낙스 사는 실제로 출퇴근 시간도, 제작의 목표량도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스태프들에게는 최고의 자유가 주어진다.

이러한 여유로움 속에서 가이낙스의 끝없는 창작욕은 생겨난다. 이전 메인 크리에이터들의 이탈로 1990년대 후반 인재부재라는 위기 속에서 잠시 주춤거렸던 가이낙스. 그러나 2001녀녀 7월 '왕립우주군' 의 감독 야마가 히로유키가 사장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마호로매틱' 이나 '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 등의 의욕작들이 발표되면서 현재 가이낙스의 분위기는 일순 창립 초기 다이콘 필름의 느낌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이런 가이낙스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에 대해 팬들은 반기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 : http://www.gainax.co.jp/
Part Cite : (Copyright of) Mania Entertainment / Nadia Data Book 2




■ Staff List

-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 각본등]
      왕립우주군, 건담 0080, 마호로매틱, 아베노바시 외

- 안노 히데야키 [감독, 각본등]
      건버스터, 나디아,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re:큐티하니 외

- 다케다 야스히로 [총괄본부장]
      다이콘 필름 외

- 마에다 마히로 [감독, 원화등]
      마크로스, 라퓨타, 나우시카, 왕립우주군, 나디아, 청의6호 외

- 요시유키 사다모토 [작화감독]
      마크로스, 건버스터, 나디아,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닷핵 외

- 신지 히구치 [감독, 콘티등]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나디아, 오타쿠의 비디오, 에반게리온 외

- 츠루마키 카즈야 [감독, 연출등]
      나디아, 에반게리온, 프리크리 외

- 마사유키 [감독, 콘티등]
      나디아, 에반게리온, 마크로스 플러스, 카레카노, 프리크리 외

- 모리 타케시 [감독, 콘티등]
      오타쿠의 비디오, 반드레드 외

- 마스오 쇼이치 [연출, 원화등]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외

- 스즈키 슌지 [원화등]
      란마1/2, 에반게리온, 마크로스 플러스, 체포하겠어!, 청의 6호 외

- 기쿠치 마사노리 [미술감독]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센과 치히로, 반드레드 2기 외

- 사사키 히로시 [미술감독]
      불새,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외

- 사기스 시로 [음악감독/작곡등]
      오렌지로드, 마크로스2, 나디아,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외




■ 야마가 히로유키

주요 직책 ː 가이낙스 창립, 감독, 각본, 원작, 프로듀서 등
참여 작품 ː (건담 0080), 왕립우주군, 마호로매틱, 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 외
기타 설명 ː
* 가이낙스 창립을 하는데 핵심이된 인물이다. 오사카 컨벤션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건담제작등에 참여했던 야마가 히로유키는 후에 다이콘필름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반다이에게 지원받으며 이름을 가이낙스로 하여 창립을 하게 된다.

* 처음에 회사를 세운뒤 첫작품인 왕립우주군을 감독, 각본, 원작까지 모두 담당하나 그 작품성에 비하여 자극하지 않는 스토리라인과 미소녀를 못 써먹었다는것때문에 당시 최거액의 돈을 쏟아붇고도 흥행 실패에 하게 된다. 그 이후로 잠시 뒤로 빠져 가이낙스 작품 주요 리드를 안노에게 물려준다. 10 여년가까이 큰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사장으로 취임하여 자신의 의욕 작품들인 마호로매틱, 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등을 제작한다.

* 동시에 제작한 두 애니중 마호로는 그 시대의 애니 시장을 잘 노린 미소녀+메이드의 요소를 갖추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상업에 무관하게 자신들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오타쿠, 매니아성 애니 아베노바시를 작업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예전보다 더 시장을 잘 아는 인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다고 유행이나 상업요소만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옛 모습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올드 매니아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인물이다.




■ 안노 히데야키

주요 직책 ː 감독, 각본, 원화 등
참여 작품 ː (건담:역습의 샤아, 반딧불의 무덤, 마크로스, 애국전대, 나우시카),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나디아,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러브앤팝, 가메라, 식일, (실사판)큐티하니, re:큐티하니 등
기타 설명 ː
* 현재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계에 세대 교체의 대표주자인 안노 히데야키. 1960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만화, 애니메이션, 특수촬영물 등에 빠져 지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는데 중학생 때는 미술부에 들어가 기초 데생도 배우지 않고 만화와 유화를 날마다 그렸다고 한다.

* 1976년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관심 있는 과목이 없었기에 오직 만화와 애니메이션, 특수촬영물에만 열심이었고 천문반에서는 친구들과 마작등에 몰두했다. 시험결과도 8점에서 98점까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과목에 따라 점수 폭이 천차만별로 학교에선 문제아로 찍혔다. 고2때, 저금을 깨고 원하던 8mm 필름기자재를 구입, 학교축제전시용인 사진촬영과 셀 애니메이션 등을 만들었고 이후 영상제작의 매력에 빠진다. 대학 재수때는 친구들과 영화서클 섀도를 결성, 종이애니메이션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 수험공부는 하지 않고 아침저녁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나 마작, '건담' 의 녹화등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밤낮을 지냈다. "아무튼 대학에 가라!" 는 부모님과 진학률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학교의 바램으로 어쩔 수 없이 수험 준비는 한다. 그러던 중 학과시험 없이 실기만 본다는 사립오사카예술대학을 발견, 영상계획학과의 시험 내용이 콘티작성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는다.

*'울트라맨' 후속작이 방영되던 1980 년 오사카예술대학에 무사히 합격, 재학 중에 훗날 '왕립우주군' 을 감독하는 야마가 히로유키를 만나 함께 과제용 작품 등을 만든다. 2학년 때는 친구의 권유로 제 20회 일본 SF대회 오사카 컨벤션 (Daicon)의 오프닝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가, 공동작업으로서 영상제작이 가진 매력에 흠뻑 빠진다. 1982년에는 일본 최초의 SF전문점 제너럴 프로덕츠의 설립에 참여해 각종 상품의 일러스트를 맡아서 그린다. 거기서 그룹이라는 것이 가진 다양한 매력도 알게 된다. 제22회 일본 SF대회 때는 선전과 스태프 육성을 위해 만든 다이콘 필름 제작에 참가, 아마추어 작품제작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맛본다. 그 후 다이콘3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본 스튜디오 누에로부터의 권유와 작화감독 이타노 이치로의 인간성과 스타일에 이끌려 TV시리즈 '마크로스' 에 참가, 프로 애니메이터의 생활과 제작현상의 귀중한 경험을 쌓는다. '나디에' 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 사다모토 요시유키와 마에다 마히로를 만난 것도 이 때다. 그리고 다이콘4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에도 작화감독으로 참가한다. 이렇게 아마추어 영화활동에 바쁜 탓에 대학에 신경을 쓸 수 없어 학비를 내지 못했고 그에게는 어느 사이인가 퇴학처분이 내려졌다. 그것을 계기로 도쿄로 상경해 마땅한 일거리를 구하다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의 원화맨으로 채용된다. 숙식은 스튜디오에서 해결했고 이어서 극장판 '마크로스' 의 제작에도 참가한다. 또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들이 모인 스튜디오 그래비톤의 설립에도 참여하는데, '나디아' 스태프인 마스오 쇼이치, 마샤유키, 히구치 신지 등을 바로 여기서 만난다. 이후 오사카 시대의 친구들이 집결된 극장용 장편 '왕립우주군' 의 제작을 목적으로 한 가이낙스 사의 설립과 파일럿필름 제작에 참가한다. 약 1년 반의 시나리오와 디자인 작업을 거친 후에 돌입하는 본편 제작에서는 메카닉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담당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작업과 애니메이터로서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든다. '왕립우주군' 이 개봉된 후에는 가이낙스에서 조금 떨어져 주로 친구들이 모여있는 스튜디오 그래비톤에서 일을 한다.

* 하지만 감독부재이던 가이낙스로부터 비디오용 신기획 '건버스터' 의 제의가 왔고 고민 끝에 감독직을 수락, 약 2년간의 공을 들여 1988년 마침내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상업 애니메이션 제작을 경험하고 숨 돌린 틈도 없이 TV작품인 '나디아' 의 총감독 자리에 오른다. 그는 지금껏 가슴속에 쌓아놓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이 작품에 쏟아 부었고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스케쥴에 쫓겨 매일 밤새 작업을 한 나머지 병원 신세를 지는 등 TV시리즈의 제작 공포 또한 알게 된다. 주변의 의견에 의하여 그는 오리지널 워작으로 만들어진 TV 애니메이션의 필요성을 느낀다. "어떤 기획이든 좋으니 가져만 오면 통과시킨다" 는 그의 말로 시작, TV시리즈 '에반게리온' 을 감독한다. 이 작품은 무관심하던 전반과는 달리 안노 특유의 색채가 짙은 후반으로 갈수록 관심을 집중됐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그러나 반년 후 극장판의 총감독으로 부활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전대미문의 신드롬을 일으킨다.

* 길지 않은 시기에 좌절과 재기 사이를 오간 그는 이후 디지털 카메라로 만든 실사영화의 매력에 사로 잡힌다. 그리고 1998년 "지금의 애니메이션에는 자극이 없다" 는 말과 함꼐 돌연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영화화한 '러브앤팝' 을 발표, 실사영화감독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영화는 원작의 화제성과 독특한 영상미로 화제가 되었다. 이후 그는 모로코, 사하라사막 등지를 여행하여 심기 일전을 한다. '우주전함 야마토' 나 '건담' 등에서 보여지는 애니메이션 창작의 감독이 없다는 이유로 애니메이션계를 외도했던 그가 돌아오며 가져온 작품은 의외로 순정작품인 '그와 그녀의 사정,' 동시에 '가메라3' 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가메라 1999' 도 총감독하여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2001년에는 '식일' 을 감독, 발표하여 실사영화로 또 한번의 외도를 감행한다. '식일' 로 그는 처음 35mm 필름의 영화제작을 경험, 영상과 현장이 갖는 색다름을 만끽한다. 그 이후 '아니메 점장' 의 CM, 실사화 애니메이션인 '큐티하니' 등의 감독을 맡는다.




■ 다케다 야스히로

주요 직책 ː 총괄 본부장
참여 작품 ː 다이콘필름 외
기타 설명 ː
* 오사카 컨벤션 (다이콘) 에서 나중에 가이낙스의 주요인물들과 만나서 일하게되는 인물이다. SF서클등에 가입하여 그런쪽에 시간을 다 투자하는 바람에 한 학년에서 5년씩이나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후에 가이낙스 창립이후로 본부장을 맡고 일하게 된다. 실제적으로 크게 참여하는 작품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조금씩 뒤에서 서포트하는 인물로 있는것으로 알려져있다. 해외마케팅이나 해외컨벤션등에도 모습을 보이는 가이낙스 본부장, 재일교포란것이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또 흥미로운 인물이다. (한국에 대한 배려로 일본애니관련 사이트중 최초로 한글페이지를 만들었다)




■ 마에다 마히로

주요 직책 ː 곤조 창립, 감독, 원화 등
참여 작품 ː (마크로스, 나우시카, 라퓨타), 왕립우주군, 나디아, 청의 6호, 파판 언리미티드 등
기타 설명 ː
* 1963년 후쿠오카 태생. 1983녀녀 대학재학 시절 제4회 오사카 SF대회의 오프닝에 상여되어 화제가 된 단편작품 '다이콘4' 의 제작에 참가해 주목을 받고 TV시리즈 '마크로스' 에서 원화, 동화, 레이아웃을 담당한다. 이후 '나우시카,' '라퓨타' 등 다수의 작품에 참가한다.

* 1987년 안노 히데야키, 야마가 히로유키등과 함께 가이낙스 창립멤버가 되어 '왕립우주구니' '나디아' 등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가이낙스 퇴사 후 프리랜서 활동 중인 1992년에 가이낙스에서 독립한 몇몇 동료들과 함께 곤조라는 제작사를 설립한다.

* 특촬영화 '가메라' 시리즈에서 괴수 디자인을 했고 1998년 비디오용 작품 '청의 6호' 의 감독을 맡아 이름을 알리며 지금에 이른다. '파판 언리미티드' 의 총감독을 담당하고 '나디아' 의 초기설정에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세계관 형성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본편작업에서는 각화에 필요한 주인공, 메카닉, 배경 등을 설정했다.

* 그 자신도 작화에 뛰어났지만 다른 가이낙스의 작화측 멤버들을 모아 곤조를 제작하여 곤조의 작화및 전체적인 비쥬얼의 솜씨가 뛰어날수 있었다.




■ 사다모토 요시유키

주요 직책 ː 작화감독, 캐릭터 디자인 등
참여 작품 ː 마크로스, 건버스터,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닷핵, 프리크리, 망각의 선율, 톱을 노려라 2 등
기타 설명 ː
* 1962년 야마구치 현 태생. 도쿄 조형대학을 졸업한 후 1980년 만화잡지 '소년 챔피온' 에서 신인상을 수상해 만화가로 데뷔한다. 이후 TV시리즈 '마크로스' 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애니메이션계에 진출,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들어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천사의 알' 의 원화부분에 참가한다. 이후 가이낙스로 이적해 '건버스터,' '에반게리온,' '그와 그녀의 사정' 등 가이낙스의 대부분 작품에서 캐릭터 디자이너와 작화감독으로서 맹활약한다. '프리크리' 에서는 완벽하게 다른 그림체를 한번 선 보이기도 한다. 2007 년을 무대로 인터넷 게임세계와 현실세계의 사이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닷핵' 의 거대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애니메이션에 참여했다가 가이낙스의 '망각의 선율' 에서 메카닉 디자인 (아이바) 을 맡게 된다.

* 애니메이션 영상에서 젖가슴 흔들림 (乳ユラシ) 을 세계 최초로 묘사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 외 '루나 사가' 등의 게임 디자인이나 코믹판 '에반게리온' 등의 만화도 그렸다. '나디아' 에서는 이전 '왕립우주군' 이나 '로봇카니발' 에서 보여줬던 곡선 우주의 캐릭터 디자인에서 직선을 이용한 상큼한 느낌의 분위기로 바꾸는데 성공, 1990년대 캐릭터 스타일을 주도한다.

* 단순히 애니메이션계이외에도 일본 음악 앨범 자켓 디자인및 일러스트나 일본공군의 기체 엠블렘및 로고 디자인을 작업하기도 한다.




■ 신지 히구치

주요 직책 ː 감독, 콘티 등
참여 작품 ː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나디아, 오타쿠의 비디오, 에반게리온 외
기타 설명 ː
* 1965년 도쿄 태생. 18살대 '고질라' 의 특수조형조수로 영화계에 입문. 다이콘 필름 시대에 안노 히데야키와 만나 1986년 비디오 '팔두오아뱀의 역습' 에서 특수기술감독을 맡아 주목을 받았고 이후 '왕립우주군' 의 조감독과 설정, '건버스터' 의 설정과 콘티를 맡는다.

* '오타쿠의 비디오' 에서 콘티와 실사파트 감독 및 촬영을, '에반게리온' 에서는 TV시리즈와 극장판의 콘티 작업에 참가한다. 특히 안노 감독의 역작 '에반게리온' 에서는 그의 특수촬영적 영상구도와 기법들이 활용되어 임팩트한 전투 신을 만들어낸다. 주인공 신지의 이름도 바로 그가 지었다. '나디아' 에는 시리즈 중반 메인 스태프로 들어가 스케쥴에 녹초가 된 안노의 자리를 메꾸며 정열을 쏟아부었다.

* 1992년 마에다 마히로 등과 함께 곤조를 설립한 후에도 '자이언트 로보,' '마크로스 플러스' 등에서 주로 화면의 구도를 잡는 콘티 부분에 적극 참가했다. 현재 그는 '울트라맨' 이나 '가메라' 시리즈 등 오랫동안 참여해 온 특수촬영영화의 특수기술감독으로서 더욱 유명하다.




■ 츠루마키 카즈야

주요 직책 ː 감독, 연출 등
참여 작품 ː 나디아, 에반게리온, 프리크리 외
기타 설명 ː
* 안노 히데야키 감독을 스승처럼 모시며 언제나 그의 오른팔이 되어 작업한 자타가 공인하는 연출및 아이디어소유 최고의 인물이다. 건버스터 시절부터 시작,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을 할때마다 항상 부감독으로 일들을 맡아왔으며 애니내의 전체적인 시나리오나 연출, 아이디어나 기타 의견을 가장 많이 내놓기도 한다. 에반게리온에서 주황빛의 전철내부의 독백, 극장판에서의 아스카와 양산에바 전투신과 그 배경음악 AIR와의 조합, 프리크리에서의 액션효과가 바로 그의 머리로부터 나온 연출들이다.

* 항상 안노 옆에서 일하다가 안노가 "너만의 작품을 만들어봐라" 라는 말을 듣고 몇년간 혼자 작업을 해보려고 연구하다가 프리크리의 총감독을 맡게 된다. 가이낙스의 멤버이자 안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인만큼 시대 유행을 너무 따라가지도 않으며, 사회비판과 '시청자들을 위한 애니' 보다도 '나만의 애니' 를 중시하는 스타일을 보여주곤 한다. 에바에 의하여 번져버린 오타쿠문화에 대항하며 세기말을 그리며 한방 먹이는 트랩애니 프리크리의 제작으로 안노의 그늘에 가려져있다가 드디어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 마사유키

주요 직책 ː 감독, 콘티 등
참여 작품 ː 나디아, 에반게리온, 마크로스 플러스, 카레카노, 프리크리 외
기타 설명 ː
* '나디아' 에서 활약하고 TV시리즈 '에반게리온' 의 부감독을 맡고' 마크로스 플러스' 의 캐릭터 디자인, '리바이벌 오브 에반게리온 (Revival of Evangelion)' 의 총감독을 맡으며 '카레카노' 의 엔딩감수, '가메라 1999' 감독, '프리크리' 의 콘티등에 참가한다.




■ 모리 타케시

주요 직책 ː 감독, 콘티 등
참여 작품 ː 에도소년 가텐 다스케, 나디아, 오타쿠의 비디오, 건스미스 캣츠, 멀티랜서, 반드레드 외
기타 설명 ː
* 1963년 도쿄 태생. '다스케'의 감독연출콘티, '나디아'의 보조감독및 콘티, '오타쿠의 비디오' 감독, 곤조로 넘어오며 '건스미스캣츠'의 감독콘티, '멀티랜서'의 감독콘티, '반드레드' 시리즈의 워작, 감독, 콘티, 연출등 총 감독을 맡는다.




■ 마스오 쇼이치

주요 직책 ː 연출, 원화 등
참여 작품 ː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무책임함장 테일러, 멀티랜서 외
기타 설명 ː
* 1960년 도쿄 태생. '왕립우주군'의 조감독, '건버스터'의 연출, 극장판 '나디아' 의 원화, '에반게리온' 의 연출원화, '무책임함장 테일러' 의 메카닉 디자인, 원화, '멀티랜서' 의 메카닉 디자인 원화, 극장판 '에반게리온' 의 원화, '카레카노' 의 원화등에 참가한다.




■ 스즈키 슌지

주요 직책 ː 연출, 원화 등
참여 작품 ː 란마1/2, 에반게리온, 마크로스 플러스, 체포하겠어!, 청의 6호 외
기타 설명 ː
* 1961년 도쿄 태생. '란마1/2 열투편' 의 원화, '메존 이코쿠' 의 작화감독, '에반게리온' 의 작화감독과 원화, '마크로스 플러스' 의 원화, 극장판 '체포하겠어!' 의 원화와 레이아웃 협력, '청의 6호' 의 원화등에 참가했다.



■ 기쿠치 마사노리

주요 직책 ː 미술감독 등
참여 작품 ː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센과 치히로, 반드레드 2기 외
기타 설명 ː
* 1959 년 효고현 태생. 효고현립 효고공업고교를 졸업 후 우체국에 근무하다가 21살 때 산리오 사로 자신의 그림을 가져가 보여준 뒤 거기서 배경 일을 하게 된다. 그 후 잠시동안 프리랜서로서 활동하다가 '왕립우주군' 참가를 계기로 가이낙스에서 활동한다. 이후 '건버스터,' 마크로스 다아나마이트7,' '청의 6호,' '멀티랜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반드레드 2기' 등에서 미술파트 감독과 디자인을 맡았다.




■ 사사키 히로시

주요 직책 ː 미술감독 등
참여 작품 ː 불새, 왕립우주군, 건버스터 외
기타 설명 ː
* 1960년 도쿄태생, 메이지대학부속 나가노고교 졸업 후 도쿄디자인 학원에 입학한다. 재학 중 테즈카 프로덕션에 들어가 '불새' 의 배경 등을 맡았고 그 후 산리오 사로 이적, '시리우스의 전설' 등의 배경을 담당한 후 '왕립우주군' 때부터 가이낙스에 참여해 '건버스터' 의 미술감독을 한다. '노인Z,' '꿈의 별 보턴 노즈' 등에서는 배경도 맡았다.




■ 사기스 시로

주요 직책 ː 음악감독/작곡 등
참여 작품 ː 오렌지로드, 마크로스2, 나디아, 에반게리온, 카레카노 외
기타 설명 ː
* 1957년 도쿄 출생. 1978년 그룹 T.스퀘어의 멤버로 음악계 데뷔, 1979년에 'Eyes'를 발표해 솔로로 나선다. 이후 유명 가수들의 음반 제작과 프로듀서로서 활동했고 '나디아' 를 비롯해 '메가존23,' '황몽전기 레다,' '오렌지로드,' '마크로스2,' '카레카노' 등 십여편의 애니메이션 음악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그가 프로듀싱한 '에반게리온' 의 OST 음반은 일본에서만 300만장 이상의 영화음악 앨범사상 최고의 판매기록을 세운다. 또 1996년에는 자신의 레이블 Ro-JAM을 설립하는가 하면 일본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미사와 히라이 겐의 앨범작업에 참여했고 자신의 프로젝트 그룹 MASH 를 결성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선 영화 '무사' 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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